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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했으나 부자가 된 미국 유명인 Top 8

스티브박85 2020. 9. 4.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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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가져온 내용은 과거에 엄청나게 가난했으나 후에 엄청나게 부자가 된 미국 유명인들입니다.
참 부자가 되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1. 에드 시런

엄청 유명한 팝 가수 중에 한명인 에드 시런.
그도 처음에는 돈 없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왔고, 어느 작은 바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가 제이미 폭스를 만나서 인생이 바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순자산 가치는 8500만 달러 (1000억원)

 

2. 사라 제시카 파커

섹스앤더시티로 유명한 사라 제시카 파커.
그녀는 오하이오 주 넬슨빌에서 자랐으며, 가족이 생일과 크리스마스와 같은 행사를 거의 축하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전기없이 살기도 했는데 청구서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순자산 가치는 9000만 달러 (1080억원)

 

3. 아놀드 슈워제네거

최고의 액션 영화 배우이자, 7번의 미스터 올림피아 수상자,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냈던 아놀드 슈워제네거.
그는 1947년 오스트리아에서 가난하고 집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집에는 배관도 없고 전화도 없었습니다. 거리에서 폭동이 있었습니다. 그는 정말 총알을 물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그는 미국으로 이민을 왔고, 결국 성공했습니다. 그의 순자산은 4억 달러 (4800억원)

 

4. 하워드 슐츠

거대 커피 기업인 스타벅스의 CEO인 하워드 슐츠.
가난한 동네에서 자란 그는 미시간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고 학교를 다녔고, 졸업 이후에 제록스에서 일하다가 스타벅스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때 60개짜리 체인이었습니다. 그 후 1987년 스타벅스의 CEO가 되었고, 전 세계에 16,000개의 지점을 가진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그의 순자산 가치는 29억 달러 (3조 4800억원)

 

5. 오프라 윈프리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중 한 명인 오프라 윈프리(Oprah Winfrey)는 한때 모든 토크쇼 관객에게 자동차를 줄 수 있었던 세계적인 부자 중 한명입니다. 그러나 오프라의 초창기는 이 모든 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녀는 미시시피에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테네시 주립 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주에서 최초의 아프리카 계 미국인 TV 특파원이 되었고, 그 나머지는 말 그대로 역사입니다. 그녀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흑인 자선 사업가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녀의 순자산 가치 28억 달러 (3조 3600억원)

 

6. 장도원

한국인도 한명 끼어있네요. 포에버 21의 회장인 장도원님입니다.
1981년 그의 와이프와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갔을때, 그는 관리인, 커피숍, 주유소 직원으로서 쓰리잡을 뛰면서 아내와 함께 생계를 꾸리기도 하는 등 많은 고난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부부는 1984년에 포에버 21이라고 불리는 작은 가게인 첫 의류 매장을 시작했는데요, 오늘날 이 의류 체인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으며 트렌디한 옷으로 유명합니다.
그의 순자산 가치 65억달러 (7조 8천억원)

-> 최근 뉴스기사를 찾아보니 포에버21 파산했다고 합니다.

 

7. 래리 엘리슨

래리는 1994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는 시카고에서 이모와 삼촌에 의해 자랐습니다. 그의 이모는 죽었고, 래리는 대학을 중퇴하고 캘리포니아로 이사했습니다. 그는 소프트웨어 개발 연구소를 설립하고 CIA에 대한 오라클이라는 데이터베이스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계약을 따냈습니다. IBM은 오라클을 사용했고 곧 래리는 최고의 제품을 따서 회사이름으로 변경했습니다. 그래서, 오라클, 유명한 소프트웨어 기업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의 순자산 가치 599억 달러 (약 72조원)

 

8. 스티브 잡스

전 애플의 CEO였던 스티브 잡스.
그는 입양을 당했다고 하며, 양부모가 학비를 대주지 못해서 대학을 중퇴했습니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서 무료급식을 찾아먹기도 하고, 히피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이후에 아타리에서 기술자로 일을 시작했죠. 그는 결국 애플의 CEO가 되었습니다.

 

다들 대기만성, 개천에서 용난 케이스이긴 합니다만 뼈를 깍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죠.
저도 이 글 작성하면서 자극을 받아서 더 열심히 살아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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